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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2 재개발에 또다시 사라지는 내 신혼집 3
난 이렇게 산다2008. 10. 12. 06:44


주말을 맞아 신혼 2년을 보낸 전세집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4살바기 어린 딸이 벌써부터 향수병이 돗였는지 '아빠 추운집 가자 추운집 가자' 하면서 재촉하길래 이쁜딸의 제안을 거절못하고 찾게 되었죠. 겨울에는 거실에서 얼음이 얼어버릴 정도로 추웠던 집이라서 지금도 제 딸은 그 집을 추운집이라고 부릅니다.

<한가롭게만 보이는 광경이지만 사진에서 우측은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입니다>

 
재개발 열풍으로 이제 서울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80년대의 정취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남가좌동입니다. 그 시절 단독 주택 열풍이 불었었는지 이 동네의 단독주택들은 주택 모양세가 거의 비슷비슷 합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건설업자들이 대규모로 들어와서 한방에 만들어진 동네라더군요.
그래도 주택들이 겉모양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집들이 허술하게들 지어져서 여름에는 덮고, 겨울에는 추운 집들이 태반입니다. 
  뉴타운 제4지구로 지정되어 철거를 앞둔 이 동네는 제가 신혼생활을 하면서산책도 하고, 밤에는 맥주 한잔에 골벵이 무침도 먹고 했던 그런 추억하고는 이미 거리가 멀어져 있었습니다.

<집에서 세탁하기 힘든 옷가지들을 종종 맡겼던 세탁소도 이제 없습니다>

첫 신혼을 보낸 동네는 집값 싸기로 유명했던 응암동이었는데, 그 곳 역시 재개발지구로 선정되어 이제 철거만 앞두고 있습니다. 없는 형편에 싼 동네, 싼 집을 찾아 다닌지라 그랬던건지, 재개발 열풍에 휩싸인 서울에서는 당연하게 지나가는 시대적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가는 곳마다 철거되어 사진이 아니면 다시는 내가 살았던 동네를 볼 수 없다는 것에 약간은 서그픈 감정이 밀려 옵니다.

 
<가끔 밥맛 없을 때 찾던 식당도 이젠 없네요>


빨간 천막집이 저희 집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인데 오랜만에 가서 가게주인 할머니한테 인사도 드렸습니다. 날짜를 확인하지 않고 사면 종종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을 사게되서 몇번 물건을 바꾼적도 있지만, 집에서 아주 가까운 가게였기 때문에 종종 이용했던 가게입니다. 평생을 이 가게를 꾸리며 살아오신 분들이 이제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실지 약간 궁금하기도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막다른 골목 끝 집이 제가 살던 집인데 이렇게 구석구석까지 재개발 지역의 씁쓸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벽마다 이삿짐센타의 홍모물들이 가득가득 붙어있는게 을씨년스러움을 더합니다.


<우측이 저의 두번째 신혼집입니다>


재개발센타와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한 몇몇 집들은 아직 이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10월에 접어들었지만 원래는 올해 봄에 철거가 들어갈 동네였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승용차가 아직 이사를 가지 않은 집의 차 입니다. 우측이 제가 살던 집인데 나름 운치가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살구나무, 감나무가 크게 자라 있어서 봄에는 살구가 잔득 열리고, 가을에는 큰 감이 엄청나게 열립니다. 물론 때가 되면 주인집이 와서 수확(?)을 해가기 때문에 제가 건들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습니다.  이 집이 동네에서는 감나무집으로 통했다는 사실도 이사와서 한참을 살면서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재개발이 확정된 동네의 집들은 이렇게 크게 X표시를 하고, 이 집의 주소를 크게 빨간색 락커로 그려놓습니다. 그리고 이 집에 출입하는건 불법이기 때문에 이렇게 대문까지 꼭꼭 걸어잡금니다. 아랫층에 혼자 쓸쓸히 노동일을 하며 살아가시는 아저씨 한분도 철거가 확정되었는데 돈이 없어 갈곳이 없어서 끝까지 버티셨는데, 이제 어디론가 가신 듯 합니다. 대문까지 잠긴걸보니 말이죠. 이렇게 정말 살기 힘든 분들은 또 다시 어디론가 살수 있을만한 집을 구하셔야 하는데, 서울의 오래된 동네는 대부분 재개발이 되었거나, 재개발지구가 되었기 때문에 정말 집구하기가 힘듭니다. 겉모습만 화려하게 만들어진 아파트촌의 이면에는 이렇게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곧 철거를 앞둔 2~30년 된 집과 뒷편으로 보이는 큰 평수의 고가의 아파트가 대조를 이룹니다. 이제 이 동네도 뒤에 보이는 아파트 촌과 같이 되겠지만, 어느 봄날 봄볕이 따스하게 내릴 때 부는 산들한 봄바람에 얼굴을 내맡길 때의 그 기분, 처마 아래로 떨어지는 봄비가 내는 정겨운 소리를 이제 후세들이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제 사람이 살지 않아 정리가 안된 넝쿨이 오히려 정겨움마저 더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정말 옛날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주는 이 집의 느낌을, 그리고 신혼을 2년 동안 보낸 이집의 느낌을 오래 간직하려고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집에 살았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와이프를 모델로 세웠습니다.

비록 2년을 살았던 집이지만, 기름보일러의 경제적 압박과 겨울에는 거실에 얼음이 얼어버리는 좋지 않은 추억도 있지만,  이렇게 정취있는 집에서 내가 2년을 살았고, 둘째를 낳고, 비가 내릴 때면 거실에 앉아 큰 베란다 창 너머 빗소리를 들으며 아내와 커피한잔 하던 추억에 내심 미소가 지어집니다. 향수병이 돋여서 방문한 예전에 살던 집이 향수만 불러오는게 아니라, 재개발로 인해 추억만 남기고 딱딱한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라지는 동네 때문에 서글픈 마음이 앞섭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자료를 남기지 않으면 머리속으로만 상상해야 한다니... 답답하기도 합니다.

어릴적 뛰어놀던 동네는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동네의 자료 조차 구하기 힘들게 됐는데,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런 현상은 변함이 없네요. 아무리 겉모습이 번지르르한 아파트로 재개발을 한다고 해도 그 동네에서 평생을 살았던 이들을 위한 정책이 같이 동반되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이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중...
Posted by 서연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