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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2 내가 정의한 깨닳음.
난 이렇게 산다2011. 3. 2. 03:49

정리한다는건 의미가 크다. 

오늘도 내 특기인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이론을 정립하고자 정리한다.

도가에서 말하는 깨닳음이란 무엇인가? 나를 찾는다는건 무엇인가? 

그리고 그 필요성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나를 찾은 다음에 뭐 어쩌라고...

유전자가 안드로메다인이 아닌 이상 지구에서 태어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대동소이 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슷하다. 먹고 싸는 문제에 더해, 잘 먹고 잘 싸는 법이 무엇인지 우리는 

평생 궁금해하며 궁극의 잘 먹고 잘 싸는 방법을 찾아 경제 생활을 해나간다.

한번쯤 이런 생각들을 해 본다. 사후 세계란 있을까?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라면 사후 세계에서 보는것도 이게 전부일 수도 있다. 

사후 세계가 없다고 가정을 한다면 얼마나 비참할지 상상해 보았는가. 모든 종교, 비종교을 떠나 

사람은 사후 세계가 있기를 희망한다. 이왕 있다고 믿는거 에라 모르겠다 사후 세계에 땅까지 사서

편하게 사후 생활을 맞이 하고자 교회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수행해서 육체를 버리고

입적하여 열반에 오른다는 뭣 같지도 않은 말도 결국 사후 세계의 존재를 희망하는 의미다.

사후 세계가 없다는게 얼마나 무섭고 불행한 것인지 짧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여러분 누구라도 잠을 잔다. 꿈을 꾸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여러분은 잠을 자는 시간동안 꿈을 꾸는 시간을 제외하면 완벽하게 죽은 시체와 같다.

가끔 만취를 해서 전혀 기억이 없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그 시간 만큼은 여러분의 정신은 세상에 없다.

그 정신이 세상에 없는 시간이 바로 <무의식>의 시간이다. 자면서 의식이 없는것, 수술대에 올라 

마취제를 맞고 의식이 없는 것, 죽어서 의식이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린 것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단지 죽음이라는 건 그 무의식이 영원토록 이어진다는 것이고, 

그 영원함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 부분이다.

깨닳는다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가? 오늘의 주제는 바로 깨닳음이다.

도대체 수행자들이 말하는 그 깨닳음이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속세를 다 버리면서까지 

깨닳으려 할까.

도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있어 보이고, 그 단어를 삶의 일부로 만든 사람들을 보면 

삶을 초월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과연 대단한걸까? 

여기서 한가지 가정을 해본다. 그 깨닳음이라는 것이 사실은 X밥이었다면 어떨까?

난 여기서 깨닳음을 단순한 <무의식 속에서 날 인식하기>라고 가정을 한다. 종교에 귀의하고, 

수행한다며 자식새끼들까지 다 내팽개치고 산속으로 쳐들어가게 만든 그 깨닳음이란건 

사실은 <무의식 속에서 날 인식하기> 위해 잡념을 버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제 가정을 했으니, 꿰어 맞춰서 말이 되나 테스트를 해보자.

꿈을 꾸는 상태는 무의식은 아니지만, 무의식에 가깝다.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로 받아들인다. 

단순한 뇌작용이겠지만, 깨어 있을 때 역시 뇌작용에 의해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것과 비교하면 사실 

다르지도 않다. 그리고 완벽하게 꿈의 상황에 수동적이다. 깨어 있을때와 극히 다른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내가 의지를 가지고 뭔가 할 수가 없다.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한번쯤 꾼다는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을 꾸면서도 꿈속에서는 모든걸 포기한 채 끌려간다.

내가 중학교 때 도대체 뭔 생각을 했었는지 꿈속에서 날 인식해보자고 벼르던 적이 있었다. 그 방법이

참 단순했는데, 꿈에서 어떤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내 볼을 꼬집어서 안아프면 꿈인거다!! 라고 

인식하는 방법이었다. 거의 일주일 간을 자기 전에 머리속으로 꼬집자 꼬집자 꼬집자...를 되뇌이면서

잠을 잔 적이 있다. 어느 날 정말 꿈속에서 뭔 일이 벌어졌고, 뭔가 위급하다 느껴서 내 볼을 꼬집었다.

당연히 아프지 않았다. 아 꿈이구나라는 걸 인식한 역사적인 날이었지만, 큰 감동은 없었다.

그 어린 나이에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지금 생각해보면, 오로지 머리속에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그야말로 잡념이 없었다. 여기서 첫번째 코걸이로 수행자들이 산속에 짱박혀 속세를 버리고 

잡념을 버리는 행위가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기 위한 어떤 준비 단계가 아닐까 싶다. 

게임에 빠지면 꿈속에서도 게임 꿈을 꾸고, 여자에 빠지면 잠이 들기 전까지 온종일 여자 생각만 난다.

이런 상황에 무의식에서 뭘 해볼 수 있겠나.

궁극적으로는 단지 볼을 꼬집어 꿈이라는걸 인식하는걸 넘어 무의식에서 내 의지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잡념이 없었던 중학생 때, 그것도 볼 한번 

꼬집는데 일주일 걸렸는데 과연 내 의지대로 꿈속에서 활동할 수 있을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사회에 찌들대로 찌들어 온통 잡념 뿐인데...

결국 따지고 보면 속세 안버리고 할꺼 다하면서, 꿈에서 내 의지대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연습만 

하면 된다. 그러려면 일단 꿈을 자주 꿔야 한다. 사람이 자면 꿈은 언제나 꾸는데 꿈을 안꾼다는 말은 

기억을 못하기 때문에 그렇단다. 기억을 할 수 있는 꿈을 꾸려면 설잠을 자면 된다. 

설잠이라도 자려면 누워서 눈 감고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이제 방법은 얼추 안 것 같고, 왜 깨닳아야 하는지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자. 

삶은 짧고, 죽음은 영원하다. 만약 잘때 기억 못하는 무의식과, 마취제 맞고 무의식에 들은 것과, 

죽음 후의 무의식이 모두 같은거라면 수행이 도전해볼만 하다. 내가 현실에서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있듯이 무의식 속에서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다면 적어도 남들보다 삶에서 1.5배 이상 많은 의식을 

하는 것이고, 재수 좋게 죽음의 무의식이 잠잘 때의 무의식과 같은 거라면 난 짧은 기간 수행해서 

영원한 의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생각해보니 밑저도 본전인 장사다. 게다가 돈 쳐바르지 않아도 되고, 산속에 짱박히지 않아도 된다.

그냥 쳐 잘때 내가 날 의식할 수 있도록 집중만 하면 되는 것이다.

유전자의 좋고 나쁨이 경제활동에서 극한의 대비를 보여주는 인간의 삶이지만, 어차피 사람은 

사람이다. 달라봐야 얼마나 다를까. 종교인보다, 공중부양 하는 수행자보다 난 소녀시대가 더 우월해 

보인다. 저번에 하다가 잘 안되던 은실 뽑아 달 뒷면 여행을 다시 한번 시도해봐야겠다.

뭔가 정리를 해 놓으니 이제 될 것 같다. 신난다 야호~
 
이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중...
Posted by 서연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