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렇게 산다2011.09.07 13:08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릴 적, 50원으로 우주전쟁을 할 수 있는 갤러그에 몰빵한 적이 있었다. 일하시는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면 거리에 따라 차등을 두어 50원, 100원을 주시곤 하셨다. 50원을 받아들고 산동네를 한걸음에 내려와 오락실 가는 그 길처럼 아름답던 시절이 없었다. 지독한 가난은 우리집에 세배와 세배돈 문화를 얼려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고모할머니댁에 세배를 하러 갈 기회가 생겼다. 그 집은 그 시절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만큼 부자였기 때문에 세배돈으로 500원, 아니 천원도 받을 수 있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질 수 뿐이 없었다. 작은 형과 나는 그 눈오는 날 저녁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 눈오는 아름다운 밤 우린 미친개가 되었다. 등에는 날개가 달린 듯 공중부양하며 고모할머니댁으로 내달렸다. 인자하시고 부자이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진심어린 세배를 올렸다. 손 동작 하나하나, 발동작 하나하나 놓치지 않았다. 동작 하나하나에 세배돈의 액수가 등락할거라 생각하니 집중력을 단시간에 최대한으로 끌어내 수 밖에 없었다. 500원만 받아도 갤러그를 열판이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염통의 활동력을 배가시킬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천원일 수도 있다는 그 기대는 3일 굶었다가 끓여먹는 라면과도 비길 수 없는 큰 것 이었다. 

"하하 그래그래 오냐 세배도 잘하네 내 새끼들 공부잘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공경할 수 밖에 없는 존경스런 어르신의 말씀은 뒤로 한 채 이미 손바닥은 전방을 향해 있었다. 곧바로 우리 형과 나의 손에 묵직한게 하나씩 올려졌다.
그것은 사과(Apple)였다. 스티브잡스가 사명을 애플로 만든건 날 골탕먹이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내가 초딩 1, 2 학년에 있었던 일이다. 난 그때 이 비참한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버릇이 생겼다. 세배라는 문화는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난 되먹지 못한 관습이더냐. 

그 사과는 결코 달지 않았고, 큰 마음의 상처를 받은 작은 형은 제작년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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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중...
Posted by 서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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